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93년 한국시리즈 (문단 편집) == 시리즈 전 분위기 == * 해태 타이거즈 93시즌 [[해태 타이거즈]]는 91년의 포스를 완전히 되찾은 막강 구단이 되어 돌아왔다. [[선동열]]의 성공적 재활과 마무리 투수로서 맹활약이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17승을 올린 [[조계현]]의 활약과 신인 [[이대진]]의 화려한 데뷔, 여타 투수들의 활약으로 투수진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10승 투수 6명의 금자탑을 세웠다. 타선의 힘은 주전들의 노쇠화로 약해졌지만, 신인 이종범이 대단한 활약을 해줬고, 홍현우가 92년에 비해서는 부족하지만 어느정도 맹활약하면서 어느 정도 부족함을 메워주었다. 그러면서 1993년도 [[해태타이거즈]]는 당시 구단 역대 최다인 81승을 거두면서 2위인 삼성과의 게임 차를 7게임차로 벌렸고, 정규시즌 1위로 무난하게 [[KBO 한국시리즈]]로 직행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해 삼성이 단독 선두로 오른 적이 개막 2연전을 제외하면 딱 한번인데, 그때가 4월 20~21일 대구에서 해태를 2번 연속 꺾고 이루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해태는 삼성에게 설욕하며 삼성과 7승 4패로 공동선두를 이루었고,[* 그 경기가 [[이호성]]이 연장에서 홈런을 치며 [[오봉옥]]의 무패 행진을 깬 날이다. 오봉옥은 92년 13승 무패를 거두며 [[김성근]]의 황태자로 등극한 상태였다.] 그 이후 여세를 몰아 OB, 태평양, LG를 상대로 8연승을 달리며(잠실에서만 5연승) 한번도 다른 팀에게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태평양을 상대론 무려 17승 1패로 압살했다.] 구체적으로 전력을 살펴보면 투수진에서는 92년도 부상으로 인해 공백기에 있었던 [[선동열]]이 돌아와 마무리 투수로 나와서 10승 3패 31세이브에 당시 규정 이닝이던 126이닝을 채우며 평균자책점 '''0.78'''을 기록했다. [[조계현]]이 17승으로 다승왕을 차지하면서 새로운 선발진 에이스로 부상했다. 마당쇠 [[송유석]]이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등판하여 11승을 기록했고, 신인 [[이대진]]이 데뷔하여 특유의 강속구를 앞세워 10승을 채웠으며, [[이강철]], [[김정수(1962)|김정수]]도 10승을 달성하여 이 해 10승 투수가 6명이 배출되는 등 해태 투수진은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10승 투수 6명 배출은 지금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 전해인 92년 10승 투수 5명(이강철, 김정수, 조계현, 신동수, 문희수)을 기록한 것에서 한층 더 진일보한 것. 흠좀무한 건 당시 팀 방어율이 2.92였음에도 불구하고 1위가 아닌 2위라는 것이다. 1위는 2.89를 기록한 OB다.[* 당시 마무리투수 김경원이 129이닝으로 규정이닝을 채우며 선동열에 이어 '''1.11'''로 방어율 2위를 기록했다.] 3위는 2.95를 기록한 삼성이다. 명불허전 역대급 투고타저의 해였다. 타선의 힘은 그 전 해인 92년보다 많이 하락했다. 당시 팀타율이 .251로 4위에 그쳤다. 1위는 .271의 삼성. 팀 홈런도 95개로 2위에 그쳤으며 1위 삼성과는 무려 38개 차이였다(삼성은 당시 133개). [[이순철]], [[장채근]], [[한대화]], [[김성한#s-1]]이 약속이나 한 듯 집단 노쇠화에 걸리며 그들 4명이 자그마치 그 전해에 쳤던 홈런보다 45홈런을 까먹었는데 그게 93년 95홈런, 92년 138홈런 -43을 그대로 차지했던 것이다. 부진했던 자리를 '''[[이종범]]'''이란 걸출한 신인이 등장하여 1993시즌의 해태를 아니, 그 이후의 타이거즈를 책임지게 되었다. 3할타자나 20홈런타자가 부재했을 만큼 91, 92시즌에 비해 타격이 빈약했지만 어차피 93시즌이 손에 꼽는 투고타저시대였고,[* [[쌍방울]]과 [[태평양]]은 그 짧은 중앙 110m짜리 홈구장을 쓰는 팀이었지만 팀홈런은 46개, 35개로 빈약하기 그지없는 공격력을 보였고, 롯데는 무려 '''29홈런'''으로 역대 최소 홈런 기록을 세웠다.]. 93시즌은 팀득점이 전해에 비해 188점이나 줄었다. 그러나 93시즌이 워낙 투고타저, 득점력 자체가 삼성에 이어 2위였다. 91시즌 이후 2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해태는 이번에 7번째 우승을 노리는 해였다. 93년도의 해태의 야수들은 WAR 30.00을 찍었다. .251의 타율에다가 7할도 안되는 옵스를 찍을만큼 허접해보이는 성적을 찍었지만 그해는 역대급으로 투신타병에서 준수한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타이거즈 역사상 WAR 1,2,3위가 92,91,93이라는 점도 흥미요소. 말하자면 93년도 삼성의 화력이 압도적으로 강했었던 것이었을 뿐, 해태의 타선도 강타선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었다. * 삼성 라이온즈 1993시즌은 삼성 라이온즈에게도 중요한 시즌이 되었다. 일단 기존의 [[이만수]], [[장효조]], [[허규옥]], [[김시진]] 등의 팀 초창기 스타들이 사라지고[* 장효조와 김시진은 롯데에서 92년 은퇴. 허규옥은 92년 삼성에서 은퇴. 유일하게 이만수가 삼성에 살아남았었다. 그러나 노쇠화 등으로 포수 수비가 불가능한지라, 지명타자, 대타로밖에 못 나왔다. 여담으로 7차전 마지막 타자가 대타로 나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 이만수.] 80년대 중후반 데뷔한 [[류중일]], [[성준(야구선수)|성준]], [[김성래]], [[이종두]] 등 2세대와 그 이후 데뷔한 [[강기웅]], [[동봉철]], [[김상엽]], [[김태한]] 등의 신예, 그리고 신인 [[양준혁]]과 [[박충식]]이 이끈 한해였다. 무엇보다 무릎 부상을 등에 업고 홈런왕과 시즌 MVP를 차지한 [[김성래]]의 투혼과 [[박충식]]의 한국시리즈 3차전 15회 역투 등…. 특히나 삼성은 1986시즌 이후로 [[1986년 한국시리즈|두]] [[1987년 한국시리즈|번]]이나 해태에게 가로막혀 준우승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번의 막강한 전력으로 6번째 한국시리즈 진출에서 우승을 노리고 있었다. 과연 매번 준우승에 머무른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깰 수 있는지도 큰 관심거리였다. 무엇보다 타선이 정규시즌 해태 투수진한테 유독 강했다. 삼성은 해태를 상대로 105득점을 올리며 쌍방울(108득점)에 이어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말이 105득점이지 투고타저가 심한 그해 특성상 그해 해태의 실점은 420실점이었다. 즉 실점 중 1/4이 삼성을 상대로 내준 것이며, 말 그대로 2팀한테 내줄 실점을 삼성 한팀에게만 내준 셈이다. 게다가 그해 8월 7일 대구에서 삼성은 해태를 상대로 9개의 홈런을 쳐내며[* 이것은 [[삼성 라이온즈/1997년/5월/4일|97년 삼성이 LG를 27:5로 이길 때]] 9홈런을 치며 타이를 기록했으며, 00년의 현대가 4월5일 대전 개막전에서 한화를 상대로 10홈런을 쳐내며 깨고 만다.] 15:2로 해태를 떡실신 시켰다. 그해에 해태를 상대로 32개의 홈런을 쳐냈다. 이것은 당시 시즌 특정 팀 상대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공교롭게도 88시즌 해태가 삼성을 상대로 31개의 홈런을 쳤는데 그것을 경신했다. 그때와 똑같이 팀간 대결은 18경기였다.] 체감이 안되는가? 해태가 그해 피홈런수가 76개였다. 그중 '''원정경기 피홈런이 36개였는데 22개가 대구에서 허용한 것이었다.'''[* 원정경기 특정팀 상대 피홈런율 61%는 앞으로 깨지기 힘들 것이다. 특히 홈런 펜스가 점점 멀어져가는 2020년대 이후로는][* 덧붙여 2000 현대에게 홈구장에서 42개의 피홈런을 기록한 한화는 그래도 너무 많이 얻어 맞아서 40퍼 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삼성을 한국시리즈에서 홈런포로 찍어누르던 해태 팬들의 입장에서는 격세지감. (나머지? 전주 6개 청주 3개[* 그해 빙그레는 태풍으로 대전구장의 조명탑이 휘어지는 사고를 당해서 6월부터 8월 중순까지 청주에서만 홈경기를 치뤘다. 즉 해태 vs 빙그레 빙그레홈의 9경기중 6경기가 청주에서 열렸다.] 잠실 3개 사직 2개 인천에서는 한 개도 허용하지 않았다. 앞의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삼성은 투고타저 속에서도 유독 133팀 홈런으로 홀로 불방망이를 과시했다.[* 이 해 삼성의 팀 타격 성적이 이상하리만치 97년도의 해태와 닮았다. 133홈런으로 같고, 득점도 이해 삼성은 615점, 97해태는 616점. 20홈런 이상 타자인 [[김성래]], [[양준혁]]과 [[이종범]], [[홍현우]] 둘이 타선을 이끌었다는 것도. 다만 리그 성향은 97년 쪽이 훨씬 타자 친화적이였다. 그 97해태를 능가하는 핵타선이 97삼성이었다.][* 93년도 삼성의 타선은 wRC+(조정 득점 기여도)를 통해 역대 팀들과 비교하면 스탯티즈 기준으로 87년도 삼성에 이은 2위에 해당하는 강타선이였다. 다만 득점만을 놓고 비교하면 투고타저의 영향으로 평범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역대 리그 OPS를 비교해 보면 0.668으로 역대 최하위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투고타저였다.] [[프로야구 매니저]]나 [[마구마구]]에서도 화려한 전력으로 구현되었다. 프야메에서는 10코 3명, 마구마구에서는 무려 8레어의 팀으로.. 패넌트레이스의 승률을 떠나 개인의 성적은 정말 좋았던 팀이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2022년 기준 중요시하는 wrc+ + EAR+가 239.8로써 당해 223.8을 기록했던 해태를 능가했으면 그냥 크보 역대로 따지면 어마무시했다. 40년 프로야구 역사상 우승팀중에서도 93삼성보다 wrc + ERA+를 93삼성보다 좋은 기록을 남긴 팀이 단 4팀에 불과하다(88 91해태, 98 00현대 그중 250을 넘는 것은 88 91 해태가 유이하다.) 졌잘싸중에서도 제일 아쉬웠던 팀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